APRIL 04, 2018

[비즈니스 레스토랑 가이드] 하모 | 과하지 않은 양념, 진주 향토음식의 정수

진주 음식 전문점 ‘하모’는 2016년 11월 국내 최초로 발간된 미쉐린가이드 서울편에서 별을 받으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숨은 맛집’에서 수면 위로 급부상한 뒤에는 ‘경상도 음식은 맵고 짜고 맛없다’는 선입견을 깼다. 가늘게 썬 육회와 쏙대기 등 10가지 재료를 얹은 진주비빔밥, 당면 대신 각종 나물로 만드는 조선잡채 등 하모가 선보인 진주 향토음식은 자극적이지 않은 정갈한 맛으로 신선한 충격을 줬다. 

하모의 음식은 과하지 않은 양념과 과하지 않은 조리법이 특징이다. 산지에서 찾아낸 건강한 식재료를 활용해 화려하지는 않지만 재료 본연의 소박한 맛을 살리는 데 중점을 둔다. 무엇보다 눈길이 가는 것은 ‘장(醬)’이다. 하모에서는 매년 직접 기른 콩으로 한 해 동안 쓸 장을 만든다. 경기도 연천에 위치한 2000여평의 콩밭에서 일 년에 약 스무 가마의 콩을 재배한다. 임금님 수라상에 올렸다는 바로 그 연천콩이다. 장 담그는 법을 배우기 위해 5년 넘게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는 박경주 하모 셰프는 아예 연천 콩밭 옆에 집을 짓고 살면서 직접 콩 농사를 챙긴다. 장을 담가놓은 옹기만 500여개에 달할 정도. 세월이 흐르면서 한층 깊어지는 장맛은 하모가 만드는 모든 요리의 근간이 된다. 

‘하모’는 경상남도 사투리로 ‘아무렴!’이라는 뜻이다. 식당을 찾는 모든 고객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고 싶은 마음을 담아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실내 인테리어는 음식을 닮았다. 소박하면서도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은은한 멋이 있다. 아담한 홀에 비해 룸 공간이 많고 최대 18명까지 한 방을 이용할 수 있어 비즈니스 미팅이나 사적인 모임을 갖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하모의 대표 메뉴 하나를 꼽는다면 단연 진주비빔밥이겠지만 가장 인기 있는 것은 계절마다 바뀌는 제철 반상 코스다. 봄 내음이 물씬 풍기는 6가지 요리에 식사로 진주비빔밥, 헛제삿밥, 된장칼국수 중 하나를 고를 수 있어 다양한 ‘진주 스타일’의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코스 전체에 사용된 봄 나물만 10여가지에 달해 식사 내내 봄을 흠뻑 느낄 수 있다. 

본격적인 코스의 시작 전 들깨죽과 동치미로 속을 달랜다. 뚜껑을 열자 들깨의 고소한 향이 콧속을 훅 치고 들어온다. 직접 농사지은 들깨를 사용해서인지 향의 농도가 지금까지 먹어왔던 들깨죽과는 차원이 다른 농밀함을 자랑한다. 반면 입안에서 느껴지는 식감은 너무나 부드럽다. 하루 불린 쌀을 곱게 갈아 사용하고 들깨도 입자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곱게 빻아 넣기 때문. 부드러운 목넘김과 함께 입안에 기분 좋게 맴도는 들깨향은 이어지는 코스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첫 번째 요리는 ‘바지락냉이 들깨 된장소스 무침’이다. 들기름에 볶은 바지락과 냉이를 된장에 무쳐낸다. 제철을 맞아 통통하게 살이 오른 바지락이 내는 특유의 감칠맛과 향긋한 냉이의 어울림이 환상적이다. 무엇보다 두 재료의 조화를 만들어내는 된장소스의 균형감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자칫 잘못하면 재료를 잠식해버릴 수 있는 것이 된장인데, 요리의 중심을 잡으면서도 전면에 나서지 않고 재료 맛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다음은 ‘조기전’이다. 전은 웬만해서는 맛있을 수밖에 없는 음식이지만 하모의 전은 그 이상을 보여준다. 손바닥만 한 새끼 조기를 통째로 지져내는데 부드러운 식감과 고소함이 압권이다. 가시를 일일이 다 발라내는 수고 끝에 완성되는 요리. 여수에서 직접 공수해오는 새끼 조기는 크기는 작지만 살이 단단히 여물어 있다. 무엇보다 직접 담근 조선간장으로 간을 해 짭조름하면서도 비린 맛이 전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주꾸미와 봄나물 무침’이 이어진다. 주꾸미가 알을 배기 전까지 1~2달 정도만 내는 음식이다. 알을 배면 영양분을 뺏겨 살이 다소 퍽퍽해지기 때문에 더 이상 쓰지 않는다고. 봄나물은 시기마다 가장 맛있는 것을 쓰는데, 이날은 봄 산기슭에 가장 먼저 올라온다는 원추리나물(넘나물)을 맛볼 수 있었다. 그야말로 봄을 맞이하는 요리로 안성맞춤이다. 코스의 중간에 입맛을 돌게 하는 ‘포인트’로 쓰기 위해 매실청과 식초를 넣어 새콤달콤한 맛을 냈다. 탱글한 주꾸미와 살짝 데친 원추리나물이 초고추장 소스와 어우러져 입안에서 춤을 춘다. 

뒤이어 등장하는 ‘도미찜’은 쉽게 먹기 힘든 요리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도미찜이 아니라 숙주, 고사리, 부추, 방풍나물 등으로 속을 빚어 경상도식으로 쪄낸 도미찜이다. 도미살이 풀어지지 않고 식감이 살아 있도록 딱 적당한 정도로 쪄내는 것이 핵심. 찜인데도 불구하고 쫀득한 느낌의 도미살을 각종 나물과 함께 크게 한입에 넣고 먹다 보면 도미의 색다른 묘미를 느낄 수 있다. 

여기까지 해산물의 향연이었다면 이어지는 두 요리는 육류 차례다. ‘차돌박이 구이’는 최상급 한우 차돌박이 구이에 새콤하게 무친 참나물을 곁들여낸다. 주인공이 차돌박이가 아니라 참나물이라고 느껴질 만큼 특유의 향긋한 풍미가 매력적이다. 하모의 간장소스를 발라 구워낸 ‘갈비구이’는 불내가 완벽하게 살아 있어 입에 넣는 순간 ‘맛있다’는 단어가 딱 떠오른다. 코스의 대미를 장식하는 요리로 손색이 없다. 

마지막 식사 메뉴로는 조선의 3대 비빔밥이라 불리던 진주비빔밥을 비롯해 고추장 대신 간장으로 비벼 먹는 헛제삿밥과 진한 해물 육수가 일품인 된장칼국수가 준비된다. 다 맛있지만 하모를 처음 찾는다면 진주비빔밥은 꼭 한 번 먹어볼 만하다. 진주비빔밥은 고사리, 숙주나물, 무나물, 배추나물, 호박나물 등 다섯 가지 나물과 쏙대기, 육회를 올리고 보탕(소고기와 참바지락, 마른 홍합을 다져 참기름에 볶은 것을 자작하게 끓여 조선간장으로 간을 맞춘 것)으로 간을 해 고추장에 비벼 먹는 진주식 육회비빔밥이다. 모든 재료가 잘게 썰려 나오는데 숟가락 뒷부분으로 꾹꾹 눌러가며 비비는 것이 제대로 먹는 방법. 남녀노소 누구라도 좋아할 만한 건강한 맛이 일품이다. 다양한 재료들이 입안에서 어우러지면서 만드는 조화는 한국의 비빔밥만이 줄 수 있는 매력을 한껏 느끼게 한다. 

평범한 주부가 미쉐린 스타 셰프가 된 배경은 

늦깎이 요리사의 겁 없는 도전 성공기 

 

 

하모를 이끄는 박경주 셰프(61)는 여러모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미쉐린 스타 셰프라고 하면 해외 유명 레스토랑에서 수년간 경력을 쌓았거나 어릴 적부터 주방에서 일하면서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조리법을 전수받았을 것 같지만, 그는 불과 6년 전까지만 해도 요리라고는 집밥 외에는 해본 적이 없는 평범한 주부였다. 인생의 대부분을 요리와는 전혀 동떨어진 삶을 살았던 셈이다. 

그런데 어떻게 외식업계에, 그것도 비교적 생소한 진주 향토음식에 발을 들이게 됐을까. 그 뒷이야기가 재미있다. 박 셰프가 진주 향토음식을 하게 된 데는 가족의 역할이 컸다. 결혼 후 남편의 고향인 진주를 찾을 일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전통시장에 들러 진주 음식을 접했다. 진주비빔밥과 육회를 판매하는 식당을 운영했던 시모에게 틈틈이 진주 향토음식을 배우면서 그 매력에 눈을 떴다. 

“10년간 운영하던 출판사를 그만둘 때쯤 남편이 진주비빔밥을 만들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어요. 요식업 경험이 전혀 없던 것이 오히려 겁 없이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됐죠.” 

일단 결심한 뒤에는 이를 악물고 했다. 비빔밥연구소를 차려 1년 가까이 레시피를 연구했고, 원하는 맛이 나지 않을 때마다 무작정 진주로 내려가 하루에도 몇 그릇씩 비빔밥을 먹었다. 

우여곡절 끝에 미쉐린 스타 셰프라는 타이틀을 얻었지만 박경주 셰프에게 요리는 여전히 어려운 도전의 대상이다. 

“진주냉면, 진주해장국 등등 아직 소개하고 싶은 진주 음식들이 많아요. 제대로 된 장을 만드는 것에도 관심이 많고요. 앞으로 한식의 맛을 찾고 소개하는 데 남은 인생을 쓰고 싶습니다.” 

[류지민 기자 ryuna@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50호 (2018.03.21~2018.03.2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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